[눈코 공연 D-4] 작위성의 진정성, 진정성의 작위성 - 눈뜨고코베인의 Murder's High

붕가붕가레코드
'얼트 문화와 록 음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90년대 대중음악씬을 뜨겁게 달궜던 이런저런 뮤지션의 흥망성쇠에 대해 다룬 이 책은 그 특유의 애정어린 듯 객관적인 듯 냉소적인 뉘앙스로 십대 시절의 저에게 '음악으로 뭔가 그럴싸한 걸 해 볼 수 있구나'라는 낙관과 '그래봤자 막판에는 다 구려져'라는 비관을 품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음악 일을 하고 있는 요새도 여전히 갖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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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트 문화와 록 음악. 지금은 절판. 도서관에서 빌려 보세요.


그리고 "한국 팝의 고고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두 권으로 나뉘어 한국 팝의 탄생에서부터 70년대 중반 문화적-산업적으로 개화하고, 국가의 억압과 시장의 강제 아래서 생존자들의 투쟁과 새로운 흐름이 탄생하는 순간까지를 다룬" 이 책은 그 무렵의 음악의 향취에 취해있던 저희에게 나름의 가이드북이 되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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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팝의 고고학. 이 책도 품절이네요.  

저희한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이 두 책의 대표저자가 신현준 교수님입니다. 교수님보다는 아저씨라는 호칭이 좀 더 익숙하긴 한데... 어쨌든 "뮤지션이 평론가와 가까이 지내면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많다."고 말씀하시는 이분이 눈뜨고코베인 3집 [Murder's High]에 대해 한 말씀을 써 주셨습니다.




김남훈(깜악귀)를 처음 만난 것은 2002년쯤인 것 같다. 무엇보다 그의 외모나 말투가 퍽이나 독특했기 때문에 그 첫인상을 잊어버리기는 힘들었다. 겉으로 보기에 ‘힘’이 없어 보였지만, 그랬기 때문에 그 속이 에너지로 가득차 있을 거라고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되돌아 생각해 보니 그때 그는 진지하게 음악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밴드를 결성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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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고코베인의 데뷔 EP [파는 물건] (2002. 쑥고개)


그에게는 매우 미안하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그가 ‘뮤지션’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눈뜨고 코베인’이라는 너무나도 영리하게 지은 밴드의 이름은 음악적 내용에 대한 관심보다는 문화적 코드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정서적으로 가까워질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까워질 수 있는 사이라는 나의 판단은, 그 ‘가까움’이 그에게 좋은 작용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뮤지션이 평론가와 가까이 지내면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많다. 평론가는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 (물론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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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고코베인 1집 [Pop to the People] (2005. 비트볼뮤직)>





데뷔 EP와 1, 2집을 들었을 때 나의 평가는 반반이었다. 어떻게 들릴지 몰라도 ‘내가 음악을 했더라면 이런 음악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내 머리 속에 있었다(당연했지만, 만약 그랬다고 한다면 이들보다 훨씬 못했을 것이다).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 위악은 전위적이라기보다는 작위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이 작위성이 고유의 미학이라고 동의할 수 있었지만, 그 효과에 오랜 시간 동감하기는 건 다른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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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고코베인 2집 [Tales] (2008. Eggman)



2집 수록곡 '아빠가 벽장' (by 라비아쇼)



그런데 세 번째 정규 앨범 Murder's High 는 다르다. 뺨을 때리면서 ‘정말 좋아?’라고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묻는다고 해도 답은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앨범에 수록된 곡들의 가사는 여전히 위악의 테마로 가득 차 있다. 적어도 세 곡(<알리바이>, <당신 발 밑>, <일렉트릭 빔>)에서 ‘살인’의 테마가 명시적으로 등장하는 점에서 그 증세는 더 심해졌다고도 말할 수 있다. ‘미는 곡’으로 보이는 <네가 없다>에서 이펙트를 머금고 변조된 보컬은 위악을 아이러니와 부조리로 몰고 간다. 즉, 듣는 사람들이 뭐라고 그러든 ‘작가적 일관성’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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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고코베인 3집 [Murder's High] (2011. 붕가붕가레코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앨범은 이전 앨범들과는 다르게 들린다. <알리바이>를 지배하는 훵크(funk)와 <성형수술을 할래>의 달려가는 펑크(punk)와 <그 배는 침몰할 거에요>에서의 나긋나긋한 포크(folk)는, 이런 통상적 장르 구분이 한가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제 이 밴드가 어떤 감정을 어떤 음악으로 표현해야 할지를 알아낸 것처럼 들린다. 앞에서 내가 불경스럽게 작위적이라고 표현했던 ‘무언가 어색함’이 이번에는 세심하게 정제한 사운드 속에서 슬며시 사라진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가 노리던 효과는 더 잘 전달된다.  

그러고 보면 이 글의 주인공을 깜악귀로 설정한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목말라의 기타, 연리목의 키보드, 슬프니의 베이스는 이제 구력이 붙은 밴드의 구성원이 해야 할 일을 찾은 것 같고, 그래서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사이드맨/사이드우먼이 아니다. 관악 캠퍼스와 금강 휴게소의 사운드스케이프를 뒤섞어놓은 목말라의 “하나 둘 셋 넷”은 이들을 밴드로 평해야 할 많은 이유들의 하나일 뿐이다. 과대망상에 걸린 과학자의 ‘서울공습’을 노래한 <일렉트릭 빔>의 사운드가 SF풍의 와이드스크린 영상을 떠올리면서 이들의 음악적 야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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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는 ‘우리 시대의 산울림’을 얻은 것 같다. 이는 이들이 이제 비로소 산울림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역설적 의미다. 나아가 우리는 ‘한국의 R.E.M.'을 비로소 얻은 것 같다. 이건 단지 “아침이 오면”이 1980-90년대 아메리칸 컬리지 포크 록의 기수가 만들어낸 사운드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사족이지만, 빌 베리가 나가면서 R.E.M.의 스토리는 끝났지만, 장기하가 나갔어도 눈뜨고 코베인의 이야기들(tales)은 계속된다. 장기하의 탈퇴로 밴드가 눈 뜨고 코 베인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이들의 음악이 조금 더 직설화법에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개인적 바람을 피력하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 앨범을 들으면서 ‘이제 부조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 부조리와 싸울 때가 왔다’는 시대착오적 소망이 '하이(high)'하게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신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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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고코베인 단독 콘서트
Pop to the High

2011.08.14. (일) 오후 19:00
상상마당 Live Hall

예매: 27,000원 | 현매: 33,000원
예매처: 향뮤직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