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 공연 D-5] 브로콜리너마저의 덕원이 말하는 '눈뜨고코베인과 나'

붕가붕가레코드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괜찮은 것들은 눈뜨고코베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서울 봉천동 쑥고개에 있었던 눈뜨고코베인의 연습실 '중력 2만배'는 근처에서 서성거리던 적지 않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감을 바탕으로 이후 붕가붕가레코드가, 브로콜리 너마저가, 그리고 장기하와 얼굴들이 탄생했습니다. 물론 눈뜨고코베인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뭔가 다른 것들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모습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거라는 것이죠.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눈뜨고코베인의 단독 공연을 맞이하여 쑥고개 시절을 함께 했던 이들 중 하나인 브로콜리 너마저의 리더 '덕원'이 그때부터 비롯된 인연에 대해서 글을 한 토막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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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원. 2005년, 붕가붕가레코드가 막 설립되고 난 후.
그때부터 이미 그는 겁나게 고독한 사내였다.


나는 어쩌다 보니 지금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데, 그 '어쩌다'의 과정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서 영향을 받고 교류해 온 것이 상당부분이다. 그 중에서도 밴드 '눈뜨고 코베인'과의 인연은 남다른 면이 있어, 이 글을 통해 그 우여곡절에 대해 조금 밝히고자 한다.

스무살이 조금 지났을 때 즈음의 나는 뭔가를 막 만들고 싶어하던, 그렇지만 딱히 할 수 있는거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대학생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늘 심심했다. 그렇지만 역시 아는 것도 없고 서울 지리도 잘 모르고 돈도 없고 아무튼...

그러던 와중에 본 인물이 깜악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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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의 깜악귀.
그의 첫번째 밴드인 '무죄유미'를 결성한 직후.


정확히 말하면 나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문화제를 지나치다 공연을 보게 된 것이었고,
거기에 과 선배가 연주하는 밴드가 있었던 것이었고, 하필 그 선배가 연주하는 악기가 사물놀이 북이었는데(드럼은 없었다), 그 전까지 코앞에서 밴드를 본 적이 없는 순진했던 나는 격렬한 소리들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받아들일 지는 모르겠지만)에 꽤나 매료되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던 그 노래는 나중에 알게된 '그대는 냉장고'. 거기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하는 인물이 깜악귀였다는 것은 잘 알지 못했고, 그 옆에서 베이스를 치던 인물이 곰사장이었다는 것을 안 것은 무려 7~8년이 지난 뒤였지만… (여기서 곰사장의 당시 꽃미남 사진을 싣고 싶은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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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사장. 2000년, 깜악귀와 함께 밴드를 하고 있을 무렵.
꽃미남인 건 모르겠지만 체중은 지금보다 30kg가 적을 때다


그 이후에 만난것은 슬프니목말라다. 그들은 내가 가입한 노래패 '메아리'의 OB들로, 학업을 등한시 한 채 뭔가 재미있는게 없는가 찾아다니며 게으름을 피우는 하이에나 같은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숫기가 없고 조용한 성격의 신입생이었으므로
그들과 진상을 부리며 헛소리를 하는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그들이 깜악귀와 어울리면서, 나는 그때 보았던 사람이 깜악귀라는 사람이며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직접 만난것은 한참 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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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니. 2002년. 풀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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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말라. 2002년. 차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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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함께 했던 또다른 멤버, 장기하. 2002년. 용달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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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연리목. 2002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이미 그때부터 그대로 완성되어 있었다.

눈뜨고 코베인이 결성되기 전 부터 깜악귀는 통기타로 녹음한 자작곡을 인터넷에 올려왔고, 그 음질과는 상관없이 그 노래들은 모두의 관심사가 되었다. 정말 좋았으니까!! 집에서도 음악을 녹음할 수 있는 홈레코딩이라는 것이 있다고 알려지던 시절이었지만 우리는 사실 그런 방법이나 기술 같은 것은 알지도 못하던 때였다.


  깜악귀 (feat. 붕가붕가중창단) - 외로운 것이 외로운 거지



그리고 애초에 그런 것을 넘어서서, 정말 좋은 노래와 가사를 만드는 사람이 (직접 알지는 못했지만) 근처에 있다! 라는 사실은 나를 미묘하게 고무 시켰다. 게다가 나중에는 자작곡을 가지고 있는 팀들을 모아서 컴필레이션 앨범을 내기까지 했다! 나는 슬프니를 따라가서 같이 시디 박스를 옮기는걸 돕기도 했었던듯? 하다.

그렇게 결성된 눈뜨고 코베인은 홍대 클럽까지 진출, 자체적으로 데뷔 EP를 발표했고, 유수의 레이블에서 정규 음반까지 발매하며 승승장구 했다.

당시 붕가붕가레코드는 맨땅에 헤딩하던 시기, 청년실업/관악청년포크협의회 활동중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비극적이게도 나와 깜악귀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사실 사적으로 잘 알지도 못했지만) 브로콜리너마저 결성 후에 같은 작업실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쉽게 보지 못하고 있다. (그저께 아주 우연히 한번…)




오랜 시간 그의 음악성과 위트를 흠모해 왔지만 직접 처음 만나는데는 꽤 많은 시일이 걸렸다. 그리고 딱히 약속같은 걸 해서 만난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수줍고 조용한 성격인 나는 깜악귀와 쉽게 친해질 수 없었고, 좀더 속깊은 교류를 나누는 것은 지금까지도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깜악귀와 눈뜨고 코베인의 음악성에 대해 지속적이고 굳건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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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고코베인. 2004년.


항상 먼것 같기만 하던 깜악귀였지만, 우연히 그와 많은 시간을 보낼 기회가 있었다. 지금은 전설속에만 남아있는 수공업 음반 (현 쑥고개 상업음반) 다섯번째 작품인
청년실업의 싱글 중 '너 요즘 왜그래'를 녹음하던 때였다. 녹음 뿐 아니라 코러스도 참여했기 때문에, 사실 그 노래의 후렴은 우리 두 사람의 듀엣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깊은 지하에서 밤을 함께 보내며 녹음을 했고, 심지어 깜악귀는 여기 족발이 맛있다며 시장에서 족발을 사주기 까지 했다.

내 생전 그렇게 다정한 깜악귀의 모습은 이젠 다시 볼 수 없겠지…

드러머 기하의 입대와 이후 잠시 활동 공백이 있었던 그들이지만 '드럼의 구도자'로 알려진 파랑이 합류하며 이제금 다시 3집이 발매되었다고 하니 너무나 가슴이 설레였다. 수록곡들을 앞에 놓고 곰사장과 나는 '일렉트릭 빔' 과 '하나둘셋넷'이 서로 좋다며 실랑이를 벌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특히 좋아하던 눈코의 노래들은 목말라의 곡이었구나.

깜악귀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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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고코베인 단독 콘서트
Pop to the High

2011.08.14. (일) 오후 19:00
상상마당 Live Hall

예매: 27,000원 | 현매: 33,000원
예매처: 향뮤직 (바로 가기)